-이민영 대표 “구스패딩, 연미복, 드레스 등 요청 다양”
“한복을 입고 가면 세뱃돈 규모가 달라지죠, 하하.”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동작구의 반려동물 맞춤옷 제작소 ‘미뇽씨 공방(이하 미뇽씨)’에서는 반려견을 위해 직접 한복을 만드는 보호자들이 바느질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이민영 미뇽씨 대표의 도움 아래 막바지 작업에 열중했다. 앞서도 이곳에서 한복을 만든 적 있다는 반려인은 “한복을 곱게 입힌 강아지와 고향을 방문하면 어르신들도 참 좋아하신다”며 웃었다.
미뇽씨는 의상 전문가 이 대표가 반려동물을 위한 세상 하나뿐인 맞춤옷을 제작 판매하는 곳이자 수강생 대상 클래스를 진행하는 곳이다. 대학에서 의상학과를 전공한 뒤 유명 속옷 브랜드들에서 디자이너로 15년간 일한 이 대표는 지난 2018년부터 사람이 아닌 동물 의류에 재능을 쏟고 있다.
계기는 반려견 ‘초롬이’였다. 10년 전, 개인 사정으로 퇴사한 뒤 평소 꿈꾸던 강아지를 들였다. 당시만 해도 초롬이의 견종인 베들링턴 테리어가 국내에 많지 않았다. 초롬이에게 어울리면서 사이즈도 맞는 옷을 찾기가 어려웠던 이 대표는 전공을 살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곤 했다. 제작을 하고 남은 재료로 몇 벌씩 더 만들어서 주변에 전하던 것이 입소문을 탔다.
이후 밀려드는 요청에 공방을 열고 본격적으로 주문 제작을 하고 강좌도 열었다. 이탈리안그레이하운드 등 국내에서 흔치 않은 견종을 반려하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특히 화제가 됐다. 또 코로나 팬데믹 시기 반려인구가 증가하면서 일감이 늘었다. 한 달에 백 벌 넘게 만든 적도 있었다고. 이 대표는 “정확하게 세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수천 벌은 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문이 들어오는 의상 종류도 다양해졌다. 맨 처음 구스패딩으로 시작한 것이 정장, 드레스, 파티복(연미복), 한복, 피크닉룩 등으로 늘었다. 이 대표는 “반려동물 생일은 물론이고 보호자의 결혼식, 돌잔치 같은 기념일에 함께 입을 옷을 주문하는 분이 많다. 명절, 헬로윈, 크리스마스 같은 날도 그렇고, 특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맞추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미뇽씨만의 특징은 무조건 이 대표가 반려동물과 대면해서 치수를 실측한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함께한 보호자일지라도 전문가가 직접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려동물의 옷 사이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고.
이 대표는 “제작에 들어간 뒤로도 재확인을 거치며 완벽을 기한다. 사람 옷을 만들던 시절처럼 1㎜ 오차도 용납이 안 된다”며 “이 정도로 하는 업체는 없지만 스스로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비교적 높은 판매가에도 수요가 유지되는 비결이다. 한복이 특히 그렇다. 1000만원이 넘는 사람용 맞춤 한복 만큼은 아니지만 동물용도 저고리∙바지 세트 기준 1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도 반려인들은 고품질 실크 원단에 전문가의 손길이 수놓인 프리미엄 한복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미뇽씨의 단골인 ‘마크’ 보호자는 “2019년 맞춤옷을 구매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클래스에 참가해 직접 옷을 만들기도 한다”며 “한복은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입힌다. 집이 광화문 근처라서 산책길에 딱 좋다. 대여한 한복을 입고 관광 중인 외국인들이 같이 사진 찍자며 난리”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반려견 ‘한지’ 보호자도 “한옥 카페를 갈 때마다 입힌다. 전주 한옥마을 여행 때도 최고의 아이템이었다”며 “아이의 털이 한지(韓紙)처럼 하얘서 붙인 이름인데 한복과도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땅콩이’와 함께하는 반려인은 “예전에 임시보호한 강아지가 미국으로 입양을 가서 선물로 한복을 맞춰주면서 이곳을 알게 됐다. 그 뒤로 땅콩이를 위한 한복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서 클래스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뇽씨의 탄생 계기이자 홍보 모델인 ‘정초롬 이사’는 지금도 여전히 이 대표의 ‘1호 고객’이다. 이 대표는 맞춤옷을 입힌 초롬이와 자주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찍은 사진들은 일종의 룩북(Lookbook)이 된다. 여러 업체들의 협업 요청을 정중히 고사 중이라는 그는 “초롬이까지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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