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가 ‘아시아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위기다. 미래를 이끌어 갈 연령별 대표팀이 중국, 인도네시아에게 연이어 충격패를 당하면서 크게 휘청이고 있다. A대표팀부터 연령별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하락곡선이 뚜렷해 ‘암흑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 사상 최초라는 불명예를 썼다. 한국 U-17(17세 이하) 축구 대표팀은 인도네시아에 사상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백기태 감독이 이끄는 U-17 대표팀은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프린스 압둘라 알파이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아시안컵 C조 1차전에서 인도네시아에 0-1로 패배했다. 인도네시아 상대 4전 2승1무1패가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번 대회는 오는 1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U-17 월드컵 예선을 겸한다. 조별리그만 통과해도 본선 진출권이 주어진다. 당초 한국의 무난한 조별리그 통과가 예상됐다. 한국 U-17 대표팀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인도네시아, 예멘, 아프가니스탄과 C조에 속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무너졌다. 인도네시아전 패배로 순식간에 조 3위까지 밀리면서 조별리그 탈락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대표팀은 오는 8일 아프가니스탄을 만나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충격적인 성적표는 끝이 아니다. 지난달 한국 U-22 대표팀은 중국축구협회(CFA) 초청 4개국 친선대회 2차전에서 중국에 0-1로 패했다. 무려 8년 만의 중국전 패배다. 심지어 앞선 베트남과의 1차전에선 1-1로 비겼다. 우즈베키스탄에만 1승을 거둬 최종 1승1무1패의 기록으로 귀국했다. 어수선한 배경이 한몫했다. U-22 대표팀 사령탑은 현재 공석이다. 지난해 황선홍 감독이 이끈 U-23 대표팀은 파리올림픽 예선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하며 8강에서 탈락,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인 이창현, 조세권, 김대환이 임시 체제로 팀을 이끌고 있다.
A대표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A대표팀은 지난해 2월 아시안컵에서 준결승에서 요르단을 만나 0-2로 패배하는 참사를 낳았다. 북중미 월드컵 2~3차 예선에선 말레이시아, 태국, 팔레스타인, 요르단, 오만에게 무승부를 기록하는 굴욕을 썼다. B조 선두는 유지하고 있으나,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역설적이다. 한국은 어느 때보다 축구 샛별의 대거 등장으로 유럽 등 세계적인 무대를 누비는 유망주가 늘어나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근간인 연령별 대표팀은 무관심과 방치 속에 무너지고 있다. 뿌리가 깊게 자리잡지 못한다면, A대표팀도 툭하면 뽑히는 한국 축구장의 논두렁 잔디처럼 패일 수밖에 없다.
새 집행부 인선을 앞둔 대한축구협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파행이 반복된 회장 선거 끝에 결국 4선에 성공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선거에 인준까지 늦어지면서 각종 타임라인이 뒤로 밀리고 있는데, 집행부를 위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새 집행부 인선도 미뤄졌다. 하루빨리 집행부를 구성하고 연령별 대표팀 감독 선임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해 쓰러지고 있는 한국 축구의 근간을 다시 잡아야 한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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