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프한 멘탈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좋지 못한 감정, 생각, 상황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회가 분명히 또 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조금 더 인내해 봅시다.” 2024년 6월 필자가 박태준 선수에게 전달한 피드백이다.
당시 박 선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23년 12월 광주FC로 이적할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박 선수의 마음과 생각은 점점 지쳐갔다. “당시에 정말 힘들었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고 낙오자가 된다면 축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이 시기에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모두 축구에 집중시키게 된다.
박 선수의 매크로 루틴(Macro Routine)은 매일 똑같았다.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일어나 약 30분 동안 멍을 때린다. 이후 책을 1시간 동안 읽는데 보통 40 페이지 정도를 읽게 된다고 한다. 그 다음 해외 축구를 본다. 주로 아스널과 브라이턴 경기를 즐겨 봤고 이를 통해 좋은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출근을 한다. 팀 미팅과 팀 훈련을 소화했고 끝나는 대로 집으로 퇴근했다. 중요한 것은 이후 시간도 축구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저녁 7시부터 해외 축구를 또다시 봤고 이후에는 팀에서 공유해 주는 훈련 영상과 미팅 자료를 꼼꼼히 체크했다. 잠은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무조건 취했다. 8~9시간 동안 깊은 수면을 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박 선수의 매크로 루틴은 약 7개월 동안 진행됐다. 답답한 마음이 커질수록 몸을 더 움직였다. 평상시 보다 더 일찍 나가 추가 훈련을 했고 그래도 해소가 되지 않을 때면 저녁에도 나가 집 앞 공원을 뛰었다. 주말에 가끔씩 PC방에 가긴 했지만 대부분 집에서 조용히 쉬었다. “힘들지 않았어요. 보란 듯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묵묵히 버텼던 것 같아요.” 필자는 ‘지독하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자기관리를 내려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많다. 박 선수는 달랐다.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때를 기다렸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박 선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2024년 9월 13일 K리그1 포항스틸러스와의 경기를 준비하는 주중이었다. 박 선수는 선발 그룹에서 팀 훈련을 소화하게 된다. 하지만 경기 이틀 전 멤버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야말로 멘탈 붕괴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묵묵히 인내하며 때를 기다렸기 때문에 심리적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박 선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팀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정효 감독을 찾아간다.

“저의 솔직한 생각을 전달했던 것 같아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박 선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온 것은 이 감독의 독설이었다. ‘너는 너무 점잖다’ ‘색깔이 없다’ ‘K리그1에서 체력이랑 기본기도 중간이다’ ‘너는 거기까지야’ ‘이렇게 축구하면 나랑 비슷하게 은퇴한다’ 등의 독설을 듣게 된다. 독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답 노트도 같이 공유했다. ‘경기장에서 더 거칠고 더럽게 해라’ ‘파울도 많이 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건넸다.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오기가 생겼어요. 요구하시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이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전화위복을 하게 된다. “저는 그동안 공격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감독님의 생각은 달랐죠. 저의 역할·임무를 정확하게 확인하게 되면서 마음과 생각이 한결 가벼워졌던 것 같아요.” 박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출전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적극적인 몸싸움과 태클, 공중 볼 경합과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이 감독의 요구 사항을 100% 수행하게 된다. 박 선수는 좋을 때 더 냉정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경기에 조금 출전했다고 해서 풀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이전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제 자신을 더 관리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

박 선수가 다시 올라서기 위해 신경을 썼던 게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멘탈’이다. 스포츠 심리전문가가 판단했을 때 박 선수의 멘탈 수준은 상당히 우수하다. 자신만의 멘탈리티를 확실하게 형성했고, 다양한 심리기술 전략을 잘 활용할 줄 안다. 박 선수는 경기 전날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PP 이미지를 작성한다. 팀의 전술·전략 및 포지션 플레이를 메모장에 작성한 후 이를 구구단처럼 외운다. 경기 당일에는 경기장에 도착해서 음악(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에너지 수준을 관리한다. 재밌는 것은 박 선수가 경기장에 가기 전에 샤워를 할 때도 음악을 똑같이 설정해서 듣는 것이다. 박 선수는 에너지 수준 관리를 통해 몰입에 도달할 수 있는 선수이며 이 전략을 완벽하게 숙달했다.
박 선수는 그라운드를 확인하러 나갈 때도 다르다. 그라운드 상태를 확인하면서 중요한 상황을 이미지로 그리며 동작의 자동적 수준을 높인다. 또 불안한 마음이나 생각이 들면 바로 ‘잘 할 거야’, ‘내가 주인공이다’, ‘할 수 있다’ 등의 자기암시를 통해 마음과 생각을 안정시킨다. 마지막으로 PP 이미지 작성 내용을 워밍업 전까지 수시로 읽고 말하며 자신의 역할·임무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박 선수의 멘탈 플랜이 경기 전에 주어지는 시간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박 선수는 경기 상황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 전에 심리적인 준비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기할 때 자연스럽게 몰입에 도달하는 것 같아요. PP 이미지 내용을 계속 생각하면서 경기를 하고, 볼이 아웃되면 다시 자각을 하는 것 같아요. 수시로 자기암시를 하고 실수를 하면 현재에 집중하는 것도 이제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박 선수는 추가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도 필자에 전달했다. “저의 역할·임무가 명확해지면서 몰입에 도달하기가 한층 더 수월해진 것 같아요. 이제는 긴장을 해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정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도자의 긍정적인 정보 전달은 선수의 멘탈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박 선수는 올 시즌 광주FC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지난 시즌과는 완전히 다르다. K리그1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현재 박 선수는 6월 2일에 군 입대(김천상무)를 앞두고 있다. 박 선수는 자신의 놀라운 성장에 대해 이 감독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이정효 감독님은 저의 은인이에요. 저는 그저 그런 선수였어요. 하지만 감독님의 지도 덕분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꿈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정말 감사해요.” 추가적으로 광주FC 박원교 분석관이 해준 말도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제가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지금 잘하고 있고 기회가 왔을 때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박 선수는 아직도 자신의 매크로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며 자기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경기력이 꾸준할 수밖에 없다. 박 선수는 K리그 어린 선수들에게도 조언을 했다. “선수는 인정을 받기 전까지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은 경기 다음날 팀 훈련을 할 때 몸이 좋아야 눈에 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해요.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은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실제로 K리그 선수들 중에 출전 기회를 자주 부여받지 못하게 되면 노력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선수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발휘한 마인드셋을 분석하면 코비 브라언트의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가 떠오른다. 박 선수가 7개월 동안 발휘한 매크로 루틴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666 프로젝트(6개월+6일+6시간)와 유사하다. 특히 자신의 종목에 모든 시간을 활용하고 집중한 부분이 동일하다. 나아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경기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때 끊임없이 준비하며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박 선수가 이 감독에게 정답 노트를 공유 받아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면 절대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박 선수가 발휘한 맘바 멘탈리티. 즉, 독사 정신에서 좋은 팁을 얻었으면 한다.
글=이상우 박사, 정리=이혜진 기자
이상우 대표는...
△멘탈 퍼포먼스 대표 △스포츠심리학 박사 △K리그 FC서울, FC안양 선수 △저서 ‘멘탈 퍼포먼스’ 베트남 진출(2025) △KFA/ONSIDE ‘이상우 박사의 축구심리상담소2 연재(2025) △한국축구과학회 이사(2025)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인천광역시청 여자핸드볼선수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인천광역시 스포츠과학센터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인천유나이티드 U15 광성중, U18 대건고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서울 풋볼A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양평FC 축구단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의정부광동FC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천안제일고 U18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부천모션FC U15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서울노원RFC U12 심리기술훈련 지원(2025)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